화면비율 : 2.35 : 1 WIDESCREEN
오디오 : Dolby 2.0
더빙 : 일본어
자막 :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상영시간 : 123분
디스크수 : 1disc
지역코드 : All
::: 줄거리
"유키코와 도미오카는 전쟁 중 인도차이나 다랏트의 수목 관리장에서 비서와 관리로 만났다. 친척인 이바에게 강간당한 뒤 일본을 떠나기 위해 식민지 근무를 지원했던 유키코는 처음에는 도미오카의 독설 때문에 마음이 상한다. 하지만 본국으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해방감과 외로움 때문에 둘은 곧 사랑에 빠지게 된다. 본국으로 돌아온 뒤 유키코는 도미오카가 본처와 헤어지고 자신을 반겨줄 것을 기대했지만 여전히 그는 본처와 함께 살고 있으며 오히려 유키코의 현실감각 없음을 탓하고 나무란다.
도미오카와 가정을 꾸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유키코는 미군을 상대하는 양공주가 된다. 아픈 아내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도미오카는 자살을 결심하고 유키코와 함께 이카호로 여행을 떠난다. 유키코는 도미오카와의 여행에서 다랏트에서의 추억을 상기하며 들뜨지만 도미오카는 여관주인의 아내 오세이와 눈이 맞아 바람을 피운다. 도쿄로 돌아온 뒤 도미오카는 오세이와 동거를 하고, 도미오카의 아이를 임신한 유키코는 희망에 들떴다가 현실을 직시하고 혼자 아이를 낙태한다. 유키코는 신흥종교를 창시해 떼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이바의 종교단체에서 회계 업무를 보면서 윤택한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아내의 장례식 비용을 변통하기 위해 찾아온 도미오카와 재회한 뒤 유키코는 다시 마음이 흔들린다. 유키코는 이바의 종교단체에서 돈을 훔쳐 도망치고 둘은 도미오카의 새로운 발령지인 야쿠시마로 향한다. 도미오카는 유키코의 동행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지만 야쿠시마로 가는 길에 유키코가 병에 걸려 기력을 잃자 최선을 다해 간호한다. 야쿠시마에 도착하여 도미오카가 수목을 연구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유키코는 숨을 거둔다.
[작품설명]
- "구로사와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와 함께 전후 일본영화의 중흥을 이끈 4대 거장 중 하나로 꼽히는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대표작.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불륜으로 맺어진 커플이 본국으로 돌아와서도 그 애증 관계를 이어가는 남녀간의 애정사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관계의 본질을 고찰하며 멜로드라마의 정수를 보여주는 1955년 작품 나루세 미키오
나루세 미키오는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아키라와 함께 전후 일본영화의 중흥을 불러일으킨 거장감독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다른 감독들에 비해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나루세가 미조구치와 오즈처럼 여성이나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멜로드라마나 홈드라마를 주로 만들었기 때문에 자신만의 영화 스타일을 갖고 있는 감독으로 인정받지 못했거나, 다른 세명의 감독과 달리 일본의 전통적인 영화 스타일보다는 할리우드 고전영화적 특징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일본 감독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내려진 평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 세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나루세는 ‘중하층 서민 가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여성과 계급 문제를 지속적으로 부각시킨 장르를 실험하면서 사회적 리얼리즘에 대한 자신의 미학’을 완성해나간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1)
피터 브룩스는 〈멜로드라마적 상상력〉에서 ‘멜로드라마’를 종교적, 원시적 신성함이 사라져 버린 근대의 극적 형식이라고 규정한다. 계몽주의가 끝나갈 무렵 신성함에 대한 갈망이 부활했지만 그것은 이미 종교적인 의미의 완전무결한 신성함으로 복원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전 시대 종교적인 테마로서 절대적인 차원의 선/악 규범이 개인의 윤리적 차원에서 인격화된 선/악의 형태로 부활하게 된다. 개인의 사적이고 윤리적인 선택을 극적 절정의 최고 관심사로 두고 과잉된 감정을 통해 상황을 절대화하고 그 과정에서 숭고미를 추구하려는 ‘멜로드라마’의 탄생은 이같은 사상적 태도와 흐름을 같이 하고 있다.
나루세 미키오의 작품은 일본 사회의 거대 담론이나 남성적인 역사를 다루기보다 여성들의 사적인 감정과 윤리적 선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일본 사회가 내포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점과 여성에게 부과되는 차별적인 성역할이 자연스럽게 폭로된다. 뿐만 아니라 내밀한 심리묘사를 통해 인간의 본원적인 욕망과 모순된 감정을 영상 이미지를 통해 표출하는 데 탁월한 연출력을 보이고 있다.
2. 원작자 하야시 후미코와 패전 문학으로서 〈부운〉
나루세 미키오는 하야시 후미코의 소설 중 〈밥〉(1951), 〈번개〉(1952), 〈아내〉(1953), 〈만국〉(1954), 〈부운〉(1955), 〈방랑기〉(1962) 등 6편을 영화화했다. 정수완은 나루세 미키오 연구자인 캐서린 러셀의 글을 빌려 하야시 후미코는 나루세가 ‘여성영화’ 장르를 확립하는데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줬다고 평가한다.2) 〈부운〉의 원작자인 하야시 후미코는 1903년생으로 195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제국주의 시절 일본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문제적인 텍스트를 생산해낸 작가이다. ‘〈부운〉은 잡지 〈후세쓰〉(風雪)에 1949년 11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연재되다가 그 뒤 〈분가쿠카이〉(文学界)에 1951년 4월까지 연재되고 같은 달 롯코출판사(六興出版社)에서 간행’3)되었다.
하야시 후미코는 행상을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늘 떠돌아다니는 삶을 살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첫사랑이었던 남성과 결혼을 꿈꾸었으나 메이지대학 졸업생이었던 상대와 학벌상의 격차를 이유로 이별을 강요당했다. 이것을 시작으로 그의 정신적 방랑이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나중에 화가인 남편 데즈카 마사하루와 결혼 생활이 시작된 이후에도 여러 애인을 두는 등 끊이지 않는 남성 편력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는 “자기 내면을 충실하게 파헤쳐 일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며,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과 과거 경험의 회상이 전개”되어 있는 〈방랑기〉(1930)를 시작으로 안정적인 문학 활동을 펼쳤다. 1937년 〈마이니치신문〉 특파원으로 난징에 가 기자 생활을 하기도 했고, 1938년에는 내각정보부에 의해 국민의 전의를 고양 촉진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펜부대’의 일원으로 상하이로 파견되기도 했다. 1942년부터는 남방 지역에 파견되었고 〈부운〉은 이 시기의 경험이 반영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녀는 이러한 활동 과정에서 국책문학도 다수 집필했기 때문에 ‘군국주의의 선전자’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패전 직후 전쟁의 실상을 자각하고 전쟁 이후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과 비애를 다룬 작품 창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여성으로서 자신의 현실을 반영한 작품들을 많이 집필했고 〈부운〉 역시 전쟁 당시와 전후를 배경으로 남녀주인공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패전 이후 ‘일본인들의 굴절된 마음을 그린 작품으로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4)
3. 영화의 주제
부운 본문 이미지 2
출처 : 네이버영화
나루세 미키오의 작품에서 여성 인물은 미조구치 겐지 작품의 여성 인물들이 남성 인물들에게 일방적으로 순종하고 희생하는 것과 달리 자신의 의지에 따라 능동적으로 행동하고 결단을 내린다. 나루세 미키오가 특히 총애했던 배우 다카미네 히데코가 연기한 〈부운〉의 여주인공 유키코 역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녀는 이바에게 강간을 당한 뒤 새로운 삶의 환경을 찾아 다랏트로 왔으며 그곳에서 도미오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유부남과의 연애는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었지만 그녀는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우위에 두고 행동한다. 패전 이후 본국인 일본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녀는 혼외관계에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비탄에 빠지기보다 도미오카의 변심을 힐난한다.
도쿄에서 도미오카는 마치 윤리적인 기준 때문에 유키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변명을 늘어놓지만 실제로 그의 행위는 이기적인 욕망의 지배를 받는다. 그는 병약한 아내를 버렸다는 비난이 두려워 유키코와 함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새로운 여자와 관계를 시작한다. 그는 늘 새로운 여성을 통해 현실 문제들로부터 도피한다.
유키코와 도미오카의 행적을 국가의 운명과 젠더적 차이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도미오카는 일본 농림부 소속 공무원인데 그는 식민지 정책에 따라 동남아시아에 파견되었다가 패전과 동시에 귀국한다. 패전 뒤 일본 사회의 혼란과 마찬가지로 그는 정신적 붕괴를 맞는다. 이후 새로운 질서를 회복한 일본 사회처럼 다시 농림부 소속 공무원이 되어 야쿠시마에 정착하게 된다. 하지만 유키코의 방랑은 국가적인 차원의 방랑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의 방랑은 국가와 사회제도에 대한 거부이며 그곳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한 몸짓’으로 읽는 것이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5)
이처럼 나루세 미키오는 개인의 욕망을 패전 뒤 일본의 사회상과 그 안에서 개인에게 요구된 가치관이 젠더별로 어떤 차이를 내포하고 있었는지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유키코가 자신의 욕망에 따라 선택한 여정은 그녀의 육체적 타락과 궤를 같이 하고 그것은 패전국 일본이 겪은 암울한 사회상을 폭로하는 역할을 한다. 강간의 상처 때문에 본국을 떠났던 유키코는 불륜 속에서도 새로운 로맨스를 꿈꾸지만 패전과 동시에 그 꿈은 가혹한 현실을 만나고, 경제적 곤란으로 양공주를 거쳐 사이비 신흥종교에 투신했다가 결국 일본 내 오지에서 병을 얻어 죽게 된다.
반면 도미오카는 자신의 비윤리적인 선택에 대해 어떤 도덕적 처벌도 받지 않고 매체를 통해 글을 발표하고 전후 재건되는 국가로부터 공무를 얻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처럼 이 영화는 패전 이후 국가 재건 과정에서 소외되는 여성의 모습과 윤리적인 태도와 상관없이 그 과정의 주체로 다시 서게 되는 남성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현실 사회의 성차별적 부조리를 드러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
유키코(다카미네 히데코) : 인도차이나의 다랏트에서 만난 도미오카와의 사랑을 실현하고자 전쟁 뒤 본국에 돌아와서도 끊임없이 그에게 구애하지만 계속해서 거절당한다. 자신의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도미오카를 욕망하지만 도미오카는 그녀를 이용하면서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아 상처를 준다. 혼자 도미오카의 아이를 낙태하고 이바의 도움으로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살지만 결국 도미오카를 잊지 못하고 그에게로 도망쳐 같이 야쿠시마행을 택하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도미오카(모리 마사유키) : 아내가 있으면서도 유키코와 사랑에 빠지지만 본국으로 돌아온 뒤 그녀를 정리하려고 마음먹는다. 경제적 어려움과 아내를 부양하는 데 대한 부담감으로 유키코와 동반 자살하려 했던 곳에서 오히려 다른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아내의 죽음 이후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직장에 복귀하지만 임지에 함께 가겠다는 유키코를 버리지 못한다. 그녀가 죽은 이후에야 그녀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애달파한다.
명장면 명대사
- 유키코 : “하노이 캠프에서 〈벨 아미〉라는 소설을 읽었어요. 당신은 딱 그 주인공 같아요. 그래도 그 주인공은 정처 없는 떠돌이라서 여자를 발판으로 출세하지만 당신은 여자를 밟기만 해요.”
- 도미오카 : “너도 남자 따위는 발판으로 삼으면 되잖아.”
- 유키코 : “흥.” (술에 취해 비웃다가 눈물을 흘리며 쓰러진다.)
- 도미오카 : “싫어하는 게 아니야. 이쯤에서 서로의 생활방식을 바꾸자는 거야. 넌 이바 집으로 돌아가면 되잖아. 아니면 그 돈을 밑천으로 새로운 생활을 해도 되고. 우리의 로맨스는 종전과 동시에 사라졌어. 나이 먹어서 옛날 꿈만 꾸는 건 그만두자. 사실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나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 일주일 뒤에 임지로 떠날 예정이야.”
이바의 돈을 훔쳐 달아난 유키코가 숨어 있는 여관에서 도미오카에게 죽겠다는 전보를 계속 보내자 이를 본 도미오카가 찾아와 재회한다. 죽겠다는 겁박에도 꿈쩍하지 않는 도미오카를 보면서 어떻게 해도 그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한 유키코가 도미오카를 비난하며 나누는 대화이다. 이 장면은 유키코가 낭만적 사랑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도미오카에 대한 욕망을 제어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반면 도미오카는 유키코와의 사랑을 과거의 사건으로 치부하고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성적인 판단과 상관없이 대상에 대한 욕망과 그 결핍을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나루세 미키오
나루세 미키오는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아키라와 함께 전후 일본영화의 중흥을 불러일으킨 거장감독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다른 감독들에 비해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나루세가 미조구치와 오즈처럼 여성이나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멜로드라마나 홈드라마를 주로 만들었기 때문에 자신만의 영화 스타일을 갖고 있는 감독으로 인정받지 못했거나, 다른 세명의 감독과 달리 일본의 전통적인 영화 스타일보다는 할리우드 고전영화적 특징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일본 감독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내려진 평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 세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나루세는 ‘중하층 서민 가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여성과 계급 문제를 지속적으로 부각시킨 장르를 실험하면서 사회적 리얼리즘에 대한 자신의 미학’을 완성해나간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1)
피터 브룩스는 〈멜로드라마적 상상력〉에서 ‘멜로드라마’를 종교적, 원시적 신성함이 사라져 버린 근대의 극적 형식이라고 규정한다. 계몽주의가 끝나갈 무렵 신성함에 대한 갈망이 부활했지만 그것은 이미 종교적인 의미의 완전무결한 신성함으로 복원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전 시대 종교적인 테마로서 절대적인 차원의 선/악 규범이 개인의 윤리적 차원에서 인격화된 선/악의 형태로 부활하게 된다. 개인의 사적이고 윤리적인 선택을 극적 절정의 최고 관심사로 두고 과잉된 감정을 통해 상황을 절대화하고 그 과정에서 숭고미를 추구하려는 ‘멜로드라마’의 탄생은 이같은 사상적 태도와 흐름을 같이 하고 있다.
나루세 미키오의 작품은 일본 사회의 거대 담론이나 남성적인 역사를 다루기보다 여성들의 사적인 감정과 윤리적 선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일본 사회가 내포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점과 여성에게 부과되는 차별적인 성역할이 자연스럽게 폭로된다. 뿐만 아니라 내밀한 심리묘사를 통해 인간의 본원적인 욕망과 모순된 감정을 영상 이미지를 통해 표출하는 데 탁월한 연출력을 보이고 있다.
2. 원작자 하야시 후미코와 패전 문학으로서 〈부운〉
나루세 미키오는 하야시 후미코의 소설 중 〈밥〉(1951), 〈번개〉(1952), 〈아내〉(1953), 〈만국〉(1954), 〈부운〉(1955), 〈방랑기〉(1962) 등 6편을 영화화했다. 정수완은 나루세 미키오 연구자인 캐서린 러셀의 글을 빌려 하야시 후미코는 나루세가 ‘여성영화’ 장르를 확립하는데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줬다고 평가한다.2) 〈부운〉의 원작자인 하야시 후미코는 1903년생으로 195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제국주의 시절 일본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문제적인 텍스트를 생산해낸 작가이다. ‘〈부운〉은 잡지 〈후세쓰〉(風雪)에 1949년 11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연재되다가 그 뒤 〈분가쿠카이〉(文学界)에 1951년 4월까지 연재되고 같은 달 롯코출판사(六興出版社)에서 간행’3)되었다.
하야시 후미코는 행상을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늘 떠돌아다니는 삶을 살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첫사랑이었던 남성과 결혼을 꿈꾸었으나 메이지대학 졸업생이었던 상대와 학벌상의 격차를 이유로 이별을 강요당했다. 이것을 시작으로 그의 정신적 방랑이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나중에 화가인 남편 데즈카 마사하루와 결혼 생활이 시작된 이후에도 여러 애인을 두는 등 끊이지 않는 남성 편력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는 “자기 내면을 충실하게 파헤쳐 일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며,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과 과거 경험의 회상이 전개”되어 있는 〈방랑기〉(1930)를 시작으로 안정적인 문학 활동을 펼쳤다. 1937년 〈마이니치신문〉 특파원으로 난징에 가 기자 생활을 하기도 했고, 1938년에는 내각정보부에 의해 국민의 전의를 고양 촉진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펜부대’의 일원으로 상하이로 파견되기도 했다. 1942년부터는 남방 지역에 파견되었고 〈부운〉은 이 시기의 경험이 반영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녀는 이러한 활동 과정에서 국책문학도 다수 집필했기 때문에 ‘군국주의의 선전자’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패전 직후 전쟁의 실상을 자각하고 전쟁 이후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과 비애를 다룬 작품 창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여성으로서 자신의 현실을 반영한 작품들을 많이 집필했고 〈부운〉 역시 전쟁 당시와 전후를 배경으로 남녀주인공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패전 이후 ‘일본인들의 굴절된 마음을 그린 작품으로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4)
<영화의 주제>
부운 본문 이미지 2
출처 : 네이버영화
나루세 미키오의 작품에서 여성 인물은 미조구치 겐지 작품의 여성 인물들이 남성 인물들에게 일방적으로 순종하고 희생하는 것과 달리 자신의 의지에 따라 능동적으로 행동하고 결단을 내린다. 나루세 미키오가 특히 총애했던 배우 다카미네 히데코가 연기한 〈부운〉의 여주인공 유키코 역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녀는 이바에게 강간을 당한 뒤 새로운 삶의 환경을 찾아 다랏트로 왔으며 그곳에서 도미오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유부남과의 연애는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었지만 그녀는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우위에 두고 행동한다. 패전 이후 본국인 일본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녀는 혼외관계에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비탄에 빠지기보다 도미오카의 변심을 힐난한다.
도쿄에서 도미오카는 마치 윤리적인 기준 때문에 유키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변명을 늘어놓지만 실제로 그의 행위는 이기적인 욕망의 지배를 받는다. 그는 병약한 아내를 버렸다는 비난이 두려워 유키코와 함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새로운 여자와 관계를 시작한다. 그는 늘 새로운 여성을 통해 현실 문제들로부터 도피한다.
유키코와 도미오카의 행적을 국가의 운명과 젠더적 차이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도미오카는 일본 농림부 소속 공무원인데 그는 식민지 정책에 따라 동남아시아에 파견되었다가 패전과 동시에 귀국한다. 패전 뒤 일본 사회의 혼란과 마찬가지로 그는 정신적 붕괴를 맞는다. 이후 새로운 질서를 회복한 일본 사회처럼 다시 농림부 소속 공무원이 되어 야쿠시마에 정착하게 된다. 하지만 유키코의 방랑은 국가적인 차원의 방랑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의 방랑은 국가와 사회제도에 대한 거부이며 그곳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한 몸짓’으로 읽는 것이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5)
이처럼 나루세 미키오는 개인의 욕망을 패전 뒤 일본의 사회상과 그 안에서 개인에게 요구된 가치관이 젠더별로 어떤 차이를 내포하고 있었는지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유키코가 자신의 욕망에 따라 선택한 여정은 그녀의 육체적 타락과 궤를 같이 하고 그것은 패전국 일본이 겪은 암울한 사회상을 폭로하는 역할을 한다. 강간의 상처 때문에 본국을 떠났던 유키코는 불륜 속에서도 새로운 로맨스를 꿈꾸지만 패전과 동시에 그 꿈은 가혹한 현실을 만나고, 경제적 곤란으로 양공주를 거쳐 사이비 신흥종교에 투신했다가 결국 일본 내 오지에서 병을 얻어 죽게 된다.
반면 도미오카는 자신의 비윤리적인 선택에 대해 어떤 도덕적 처벌도 받지 않고 매체를 통해 글을 발표하고 전후 재건되는 국가로부터 공무를 얻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처럼 이 영화는 패전 이후 국가 재건 과정에서 소외되는 여성의 모습과 윤리적인 태도와 상관없이 그 과정의 주체로 다시 서게 되는 남성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현실 사회의 성차별적 부조리를 드러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
유키코(다카미네 히데코) : 인도차이나의 다랏트에서 만난 도미오카와의 사랑을 실현하고자 전쟁 뒤 본국에 돌아와서도 끊임없이 그에게 구애하지만 계속해서 거절당한다. 자신의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도미오카를 욕망하지만 도미오카는 그녀를 이용하면서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아 상처를 준다. 혼자 도미오카의 아이를 낙태하고 이바의 도움으로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살지만 결국 도미오카를 잊지 못하고 그에게로 도망쳐 같이 야쿠시마행을 택하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도미오카(모리 마사유키) : 아내가 있으면서도 유키코와 사랑에 빠지지만 본국으로 돌아온 뒤 그녀를 정리하려고 마음먹는다. 경제적 어려움과 아내를 부양하는 데 대한 부담감으로 유키코와 동반 자살하려 했던 곳에서 오히려 다른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아내의 죽음 이후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직장에 복귀하지만 임지에 함께 가겠다는 유키코를 버리지 못한다. 그녀가 죽은 이후에야 그녀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애달파한다.
명장면 명대사
- 유키코 : “하노이 캠프에서 〈벨 아미〉라는 소설을 읽었어요. 당신은 딱 그 주인공 같아요. 그래도 그 주인공은 정처 없는 떠돌이라서 여자를 발판으로 출세하지만 당신은 여자를 밟기만 해요.”
- 도미오카 : “너도 남자 따위는 발판으로 삼으면 되잖아.”
- 유키코 : “흥.” (술에 취해 비웃다가 눈물을 흘리며 쓰러진다.)
- 도미오카 : “싫어하는 게 아니야. 이쯤에서 서로의 생활방식을 바꾸자는 거야. 넌 이바 집으로 돌아가면 되잖아. 아니면 그 돈을 밑천으로 새로운 생활을 해도 되고. 우리의 로맨스는 종전과 동시에 사라졌어. 나이 먹어서 옛날 꿈만 꾸는 건 그만두자. 사실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나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 일주일 뒤에 임지로 떠날 예정이야.”
이바의 돈을 훔쳐 달아난 유키코가 숨어 있는 여관에서 도미오카에게 죽겠다는 전보를 계속 보내자 이를 본 도미오카가 찾아와 재회한다. 죽겠다는 겁박에도 꿈쩍하지 않는 도미오카를 보면서 어떻게 해도 그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한 유키코가 도미오카를 비난하며 나누는 대화이다. 이 장면은 유키코가 낭만적 사랑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도미오카에 대한 욕망을 제어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반면 도미오카는 유키코와의 사랑을 과거의 사건으로 치부하고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성적인 판단과 상관없이 대상에 대한 욕망과 그 결핍을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