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대만의 하늘은 우중충하다. 집에서는 또 물이 문제다. 샤오강은 여전히 아체의 뒤를 쫓는다. 하루키 소설에서의 주인공들처럼 청소년 나타를 시작으로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동일 인물이라 착각할 만큼 항상 변함이 없다. 특히 샤오강의 정체성은 조금도 변하질 않고 그의 직업만 조금씩 바뀔 뿐이다. 그런 날을 골라서 찍은건지 그게 아니라면 대체 저런 색감을 어떻게 그렇게 일관성 있게 표현해 낼 수가 있는건지….축축한 청회색의 타이페이,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청년의 그들은 청소년으로 내 앞에 나타난다. 의사 소통에 한 맺힌 것 같은 차이밍 량은 이번에도 역시 그것에 대해 다룬다.
부모님을 무시하고 샤오강은 타이페이 시내의 밝은 불빛으로 향하기 위해 지역 특수학교에서 벗어난다. 그는 예쁜 모자의 아쯔와 사랑에 빠졌고 그들의 관계는 영웅적 숭배와 경쟁의 혼란스러운 혼합물이어서 곧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샤오강은 학원비를 유흥비로 허비하며 지내다가 불량소년 아택을 만나게 된다. 아택은 보스의 애인을 사귀고, 샤오강은 질투를 못 이겨 아택의 오토바이를 부순다.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녀는 여러 남자의 침대를 옮겨 다닌다. 어느 날 교차로에서 우연히 사건이 벌어진다. 방황하는 재수생이 자기 아버지의 택시 백미러를 깨뜨린 패거리들을 추적하고, 이때부터 타이페이이라는 음울한 도시에서 부조리한 추격전이 시작된다.
비 오는 날 두 청년이 공중전화 부스에서 동전을 훔치고 있다. 샤오강은 재수학원을 그만두고 방황을 하는데 엄마와 계부는 샤오강의 마음을 다스릴 수 없는 남이다. 샤오강의 심리상태는 오히려 집 바닥에 흥건히 고여있는 물이나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로 표현이 된다. 롤러 스케이트장에서 일하는 스무 살인 여자는 무심한 남자의 사랑을 확인하려 한다. 그녀의 표면적 고민은 남자 친구지만 실은 스무 살이 지난 허허로운 스스로의 마음을 대변한다.
차이밍량
대만의 중국 문화대학에서 드라마와 영화를 전공한 뒤, 극장 프로듀서와 시나리오 작업, TV 연출을 통해 역량을 쌓아나갔다. 1992년 10대들의 방황과 우울을 다룬 〈청소년 나타〉로 데뷔했으며, 이때부터 그의 작품에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배우 이강생과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동경국제영화제에서 동상을 수상한 〈청소년 나타〉는 도시 속의 소외와 단절이라는 차이밍량의 일관된 관심이 드러나 있는 작품으로 타이페이 3부작의 첫 번째를 장식하고 있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애정만세〉(1994)는 서로 엇갈리는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일상과 섹스를 통해 현대사회의 우울한 이미지를 그려낸 작품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그를 세계적인 감독으로 부상시켰다. 그의 가장 우울한 비전을 보여주는 〈하류〉(1996)는 섹스와 동성애와 소외와 불안을 우울하고 무미건조하게 담아낸 작품으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